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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동 [Myeong-dong, 明洞 ]
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주택지로 밀집을 이루었고, 일제 강점기 때 충무로 일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명동도 점차 상업지구로변모하게 되었다. 1923년 이후부터 명동은 서울의 번화가가 되었고, 그 후 광복과 6·25사변을 전후한 시기에 여전히 서울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. 광복의 환희, 전후의 허무와 페이소스가 흐르던 이 거리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인들은 명동거리의 다방과 술집 등에 모여 예술과 인생을 논하며 불운하였던 시대의 한과 정을 풀었다고 한다.
오늘날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6·25전쟁 직후 정부가 전재복구재건을 위한 토지계획정리추가지구로 결정한 이후부터이다. 1956년 이후 도시재개발로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고급양잠점, 양화점, 귀금속, 대형 백화점, 각종 사무실, 금융기관의 본사, 쇼핑센터 및 소매전문점들이 밀집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쇼핑 관광지로 애용되어 왔다. 당시에 국립극장과 명동성당·중국대사관·중앙우체국 등 근대건축물과 공공기관이 산재해 있었고 문인들의 집합소였던 여러 다방들은 음악·미술·문학·사진·연극 등 문화와 예술의 무대였다. 그 후 이곳은 점차적으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소비문화의 중심지, 유흥의 거리로 바뀌어 갔다.
[네이버 지식백과] 명동 [明洞] (한국민족문화대백과, 한국학중앙연구원)


pen : Uni posca pc-3m
paper : Mermaid 394 x 545(mm)